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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글

[꼬리탕탕] 관성을 그만두다.


관성. 정지하여 있는 것은 계속 정지해 있고자 하고,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 하는 것.

문득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관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은, 그러한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될 때이다.

수많은 관성이 나의 삶을 떠받쳐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나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관성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그것도 수없이 많다.

그리고 관성을 그만두는 이유는 없다. 따지면야 있겠지만서도,

그 이유를 몰라서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아니기에 관성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관성을 그만둔다는 것은 아프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며, 홀가분하기도, 서운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됐든 불편한 건 사실이다. 편할리 없지 않은가.

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면서도 못벗어날 때도 있었고,

관성을 만들고 싶지만 만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됐든 발버둥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칠 만큼 쳤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몇 번은 더 나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만두게 되는 건 미련해서일까.

미련해서든, 노력을 하기 위해서든, 기회를 주기 위해서든 관성을 그만둔 다음에는 중요하지 않다.

지나간 것에 무어라 이름 붙인다 한들. 관성을 그만두는 이유는 없는 거로 한다.

관성을 그만둔 후에도 관성의 찌꺼기들이 한동안 머물기 마련이지만,

그 찌꺼기들을 모아 다시 관성이 되지 않길.


p.s. 관성을 만들고, 부수는 것 역시 관성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