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Zinna/글

[메모] 밤이 선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나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와 대답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는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의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깊이 있게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분노가 용기를 대신하려들고, 불신이 지혜를 가장한다."


"이 유례없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종교가 맞닥뜨려 싸워야 할 것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 경건함이 깃들 수 없는, 그것이 아예 무엇인지 모르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이렇듯 삶의 깊이가 거기 있기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모든 문명이 망한다는, 그렇게 역사는 매일매일 새로 시작한다는 아주 오래된 증거에 다름 아니다."" 지금 손꼽아 6백 일 5백 일을 세는 사람들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음악처럼 흐르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눈앞의 참혹한 광경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볼 수 있다 해도, 옛날의 마음 아팠던 기억에는 손발이 묶여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박정희 이후 오랫동안 우리의 근대화는 눈앞에 문젯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올곧게 해결하기보다는 덮어서 보이지 않게 했으며, 구질구질하다고 여겨지는 삶은 그것이 성장하고 개화하기를 돕고 기다리기보다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아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나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그래서 나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바위를 깨뜨리지 말라. (...) 천년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살려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하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나라를 사막으로 만들고 무엇을 지키려는가."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이 슬픔이 유행을 부른다. (...)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삶을 개혁한다는 것은 말들이 지니고 있는 힘의 질서를 바꾼다는 뜻도 된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그들은 헐렁하게 살며 동시에 엄숙하게 산다."


"형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것으로 추구하는 내용은 엄숙해야 한다. 말을 바꾸자면 정치는 자유로워야 하고 문화는 엄숙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한 시대에 어떤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덕성과 학식으로 어떤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의견을 공공장소에 영원히, 그것도 토론이 가능하지 않은 형식으로, 내세울 권리는 없다.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기계 뒤에도 사람이 있고 기계 속에도 사람이 있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 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 골짜기에 댐을 막으면 사람의 집이 물속에 들어가야 하고, 개펄에 둑을 쌓으면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흙속에 묻힌다. 사람은 큰 집에서도 살고 작은 집에서도 살고 집이 아닌 것 같은 집에서도 산다."


"폐쇄사회가 당하는 가장 큰 곤경, 그것은 모든 사태가 항상 어느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리라."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나이가 들면 어둠은 더욱 많아집니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이가 들면 어둠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용서하게 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