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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글

[꼬리탕탕] 인간으로 태어난 죄.

평등과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중 세계인권선언을 전문부터 시작해서 총 30개의 조항을 다 읽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초,중,고를 합쳐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세계인권선언을 읽어본 적도, 가르침 받아본 적도 없었다. 인권 의식은 타고날 때부터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새기고 새기는 것, 몸에 베이도록 각인하고 익힐 수밖에 없다.


1948년 12월 10일,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존재를 뼈아프게 되새기며 선포한 것이다. 다른 조항은 제쳐두더라도 제일 첫번째 조항과 마지막 조항만 늘 기억하고 있어도 인권이 무엇인지, 우리 각자의 일상은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질, 또 어떤 이에게는 지극히 환상으로만 느껴질, 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탐탁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는 세계인권선언 두 개의 조항을 소개하고 싶다. 


<제 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주어졌다. 하늘이 준 권리든, 인간이 스스로 만든 권리이든, 무엇이든 간에 저 문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인권은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문장이 무어 그리 받아들이기 힘들까,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핵심은 ‘모든’이라는 단어에 있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이 모호한 사람이든, 노인이든, 아이든, 병든 이도, 사기꾼도, 동성애자도, 장애인도, 그리고 살인자도. 모두.


살다보면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보는 것이 한두번일까. 그런데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고, 쓰레기 같고, 없는게 낫고, 죽어 마땅하며, 개새끼보다 못한 인간이 있을지라도. 그 사람은 ‘모든’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간다.


몇명을 연쇄 살인한 극악무도한 살인범도요? 네.

어린 아이를 성폭행해 죽인 새끼도요? 네.

반성은 커녕 미친 또라이 같은 새끼도 말입니까? 네.

그 씨발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당신의 가족을 죽인 새끼라도 말입니까? 네.


인권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 정말 손발이 떨리도록 혐오스럽고 죽어 마땅한 인간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 존중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는 인간을 억지로 좋아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인권이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 이 악물고 우리는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기 싫어도 시작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죄다. 


제 2조부터 29조까지는 구구절절 참 좋은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것들이 생겨났지만 어찌됐든 그 조항들에 써져 있는 것들만 지켜도 이 세상은 백번 천번 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백번 천번 변할 수 있는 우리 ‘모두’는 평등한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있다.


권리. 자유. 이 얼마나 좋은 단어인가. 인간이 만든 몇 안되는 숭고한 것들 중 어쩌면 거의 유일하게 모든 인간에게 해당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혐오할 자유, 권리가 있고, 내 뚫린 입으로 무엇이든 지껄일 자유, 권리가 있으며, 이 정글 같은 곳에서 남을 짓밟고 나 먼저 살아 남을 자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난 인권이 있는 인간이니까.


그렇다. 개나소나 외칠 수 있는 것이 인권이긴 하다. 하지만 큰 맘 먹고 앞에서 ‘모든’ 인간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을 존중하기로 했다면, 하나 더 큰 맘을 먹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제 30조>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어떤 나라에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저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무언가 반박하고 싶다면. 어느 한 쪽에서는 저 말에 울음을 참으며 고개 끄덕이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의 인권을 당신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답시고 빼앗고 짓밟은 것일테니까. 타인의 인권을 짓밟는 것은 전쟁터에서나 벌어지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내 말 한 마디, 내 행동 하나로 하고 있는 짓이다. 즉, 동성애자를 혐오할 자유나 권리 같은 것은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내 욕심과 이기심, 편견, 신념으로 타인을 재판할 권리나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인권도 여러 부분들로 나뉘어져 있어서 세밀히 들어가다보면 기본 인권끼리 충돌하거나 갈등이 생길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위 두 개의 조항을 이해하고 내 삶에 받아들인 후에야 진정한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 쉽지 않다. 인간보다는 괴물이 되는 것이 더 쉬운 세상이니까.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된 후 66년이 흘렀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더이상은 시기상조라고,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 따위로 우리가 인간임을 미루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부딪칠 때가 됐다. 아니,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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