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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글

[꼬리탕탕] 밥짓기

작은 컵으로 쌀통에서 쌀을 한 컵 반을 푼다. 

작은 압력밥솥에 쌀을 붓고 손으로 휘휘 저으며 서너번 정도 씻어 뽀얀 쌀뜨물을 버린다. 

쌀을 푸었던 컵으로 물을 한 컵 반 넣는다. 

압력밥솥 뚜껑을 닫고, 치치포포 소리나는 꼭지를 바로 세우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는다. 

가스밸브를 열고, 가스불을 켠다. 가장 강한 불에서 조금 약하게. 

3분 정도 지났을까, 압력밥솥 꼭지에서 치치포포 소리가 약하게 나기 시작한다.

타이머를 1분에 맞춰놓고 버튼을 누른다. 

멍하니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는 사이, 치치포포 소리가 점점 커진다. 

1분이 되자 타이머에서 띠디디딕, 띠디디딕, 요란한 소리를 낸다. 

가스불의 세기를 가장 약하게 줄이고, 타이머를 다시 8분을 맞춰 누른다. 

8분동안 밥상을 닦고, 반찬을 꺼내고, 찌개를 데우고, 수저를 놓는 사이, 밥 냄새가 난다. 

없던 허기마저도 생기는 순간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8분 후에 타이머가 띠디디딕, 띠디디딕, 소리를 지른다. 

타이머를 멈추고, 가스불을 끄고, 가스밸브를 잠근다. 

멍하니 밥이 뜸들 시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은 얼마만큼의 시간일까. 

사랑고백을 한 후 상대의 입술이 떼어지기 전까지의 시간일까.

오르가즘 후의 거친 숨소리가 고요해질 만큼의 시간일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등돌리기 전까지의 시간일까.

아득하고도 짧은 시간이 흐르고, 압력밥솥이 고요해진다. 

압력밥솥의 뚜껑을 스윽 연다. 뽀얀 밥연기가 화악 올라온다. 

주걱으로 밥을 슥삭 뒤집고는 살살 고슬고슬 밥을 공기에 담는다. 

나머지는 다른 용기에 담아 뚜껑으로 부채질하며 김을 식힌 후, 뚜껑을 닫아 냉동에 넣는다. 

텅빈 압력밥솥을 설거지통에 넣고, 물을 담아놓는다.

작은 밥상 위에 밥공기를 놓는다. 젓가락을 들어 밥을 얹어 입 안에 넣는다. 

그 순간, 허기가 사라져버린다.

대신 목구멍을 눈물방울 하나가 가득 메운다. 

천천히 밥알을 씹는다. 

그리고 마침내 꿀꺽. 삼킨다. 


p.s. 그렇게 오늘 하루를 꿀꺽,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