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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글

[꼬리탕탕] 요기, 딱 요기.

사각형의 길쭉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목욕탕을 가지 않게 되었다. 덩달아 목욕 후의 사이다 한 캔과 추운 겨울이면 집에 오는 사이 작은 고드름이 생기는 머리카락 등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다. 그저 가끔 습기 가득한 수증기와 목욕탕 특유의 냄새를 떠올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동네에 목욕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좋아한지 8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목욕탕에 가게 되었다. 목욕탕을 가지도 않으면서 목욕탕이 있는 동네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동네 흔한 작은 목욕탕이었다. 아직도 목욕탕에 출근도장 찍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앵글 선반 가득 목욕바구니가 차 있었고, 늘 그래왔듯 목욕탕 주인의 태도는 심드렁했으며 벌거벗은 아줌마들은 요플레 등을 얼굴과 몸에 바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욕탕 안에서 할 일이라곤 사람들의 몸을 흘낏 구경하는 것뿐이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조차 심드렁해지면서 몸은 그냥 몸이 됐다. 빽빽 울어제끼는 통통한 아기의 몸에서 배만 뽈록 나온 아이의 몸으로, 봉긋 가슴이 올라오려 하는 소녀의 몸에서 꽃 같은 엉덩이를 스스럼없이 피우고 있는 여자의 몸으로, 살이 겹겹이 쌓이고 탄력도 사라지고 있는 아줌마의 몸에서 쳐진 젖가슴과 거죽만 남아 있는 할머니의 몸으로. 


그냥 그저 몸이었다. 그냥 그저 인생인 것처럼. 


알지도 못하는 이들끼리 벌거벗고 앉아 머리를 감고 때를 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등을 톡톡 쳤다. 뒤돌아보니 조심스레 때밀이를 내밀며 자신의 등을 가리켰다. 


"미안한데 요기, 요기만 밀어줄래요? 딱 요기만 손이 안 닿아서.."


요기, 딱 요기만 손이 안 닿는 요기를 슥슥 밀어주는데, 문득 목구멍이 뻐근해진다.

목욕탕이 요기, 딱 요기만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밀 수 있는 곳이기에 안심이 되어서일까. 

그냥 그저 몸인 내 몸에 요기, 딱 요기만 손이 안닿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하고 슬퍼서일까.

인생을 몸에 담은 채 무방비하게 자신의 등을 맡기고 있는 상대의 뒷모습 때문일까. 


나른하고 별 볼 일 없는 오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p.s. 나는 요기, 딱 요기만 손이 안 닿는 부분을 혼자 닦으려다가 담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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