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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글

[꼬리탕탕] 비인간 존재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보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비인간 존재와 한 공간에서 사는 것 역시 누구나 하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와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존재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주의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정 하나, 몸짓 하나, 소리 하나에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아무리 잘난 인간 종족이라고 한들, 그 존재는 내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여서 좋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라지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하는 온갖 감정들을 고스란히 내게 건넨다. 


처음에는 그저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때가 되면 끼니를 챙겨줘야 하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을 알려주어야 하며, 아프면 병원으로 뛰어야 하고, 부담스런 병원비도 감당해야 했다. 알 수 없는 행동과 장난으로 속을 뒤집어놓기도 했고, 귀찮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 그 존재의 몸짓을 이해하게 되고, 그 존재와 나만이 알 수 있는 표정도 생겼으며, 그렇게 시간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내가 책임을 져야 했던 애완 동물에서, 나와 함께 사는 비인간 존재가 되었다. 그 존재들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오해를 산 적도 있으며, 건강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지만, 그 존재들은 나와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왔다. 그것은 그 존재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힘이 된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자, 내가 마음 한덩어리 의지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위로는 작지만, 따스한 존재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나는 이것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나와 함께 한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고, 존재이며, 존재일 것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관계를 인간 관계에서 이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나와의 관계가 참 좋다. 물론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지만, 그들이 부디 건강히 제 명을 다 하고 가길 온 마음으로 늘 바란다. 


p.s. 내가 좋아하는 인간과 그러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인간이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인간도 인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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