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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a/고양이

장그르니에의 "섬" 중 '고양이 물루'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옛날, 안타이오스신(대지에 닿기만 하면 힘을 얻을 수 있는 신화 속의 인물 - 옮긴이) 과 대지의 신 사이에 존재했던 그 친화를 가장 심각하게 재현하는 것은 바로 그 짐승들이다. 나는 지금 거처하는 호텔에서 한밤중에 잠을 깨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러나 가령 11월 15일 새벽 3시인 지금처럼 밤중에 잠을 깰 양이면 기침하는 소리, 말하는 소리.. 가 귀에 들린다. 우리 집 고양이가 잠을 잘 때는 모두가 그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한다. 이놈은 한참씩이나 가장 좋은 자리를 물색하여 마땅한 곳을 정하고 나면 몸을 웅크리는 즉시 반쯤 잠이든다. 그러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잠에 빠진다. 마치 잠드는 각단계를 계산이라도 하는 눈치다.. 


이제 그는 행복한 꿈으로 접어든다.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앉아서 새 한 마리를 노려보는 꿈이다. 그는 새를 가까이에 붙들어두고 싶어한다. 그 새가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색깔이 산뜻해서가 아니라 통통하고 묵직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물루는 새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이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물루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새는 뒷걸음을 친다. 물루는 새를 유혹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헛수고다. 마침내 새는 훌쩍 날아가 버린다. 고양이는 반쯤 잠이 깨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켠다. 또 새 잠이 들기 시작한다. 보다 가볍고 보다 상쾌한 잠, 도회지 여인들이 오전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자는 것 같은 그런 잠이 들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바로 이때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좋아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도록 귀 뒤로 손을 넣고 쓸어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턱이며 앞다리 사이의 가슴팍을 쓰다듬어줄 수 있게 된다. 물루처럼 목걸이를 한 고양이들은 털과 목걸이 사이로 손가락을넣고 애무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격을 갖추려면 목걸이를차야 한다. 그러면 그는 이내 암코양이들 사이에서 각별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제 자신에 대해서나 저를 키워주는 집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는다. 이리하여 그는 드디어 귀족이 되는 것이다. 그 새끼들도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새끼 고양이들과는 다른 긍지를 갖게 된다. 그들은 후춧가루를 친 싸구려 요리 따위는 아예 먹을 생각도 않고 비프 스테이크라야 받아 먹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와 걸맞는 신분을 가진 친구들과만 교제할 것이고 유리한 혼인이 아니면 맺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목걸이가 고양이를 매우 인간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목걸이가 없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러면 차이가 어떤지 알 수 있을 터이다. 앙고라 종, 페르시아 종, 샴 종의 고양이들 중에도 목걸이가 없는 놈이 숱하고 보면 목걸이가 반드시 타고난 종족적 우월성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고, 주인에게 귀염받고 자랐음을 표시할 뿐이다. 타고난 우월성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그 고양이가 노골적으로 받은 총애 덕분이므로 그저 주인의 우발적인 기분에만 좌우될 뿐이다. 오늘날 실시되고있는 목걸이 제도는 다른 많은 제도들과 마찬가지여서 우수한 두뇌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물루는 잠이 깨면 잠자던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께로 뛰어간다. 그리고 창턱에 몸을 쪼그리고 앉는다.그렇지 않으면 지붕 위를 지나 테라스에서 몸을 길게 뻗어서 벽 가까이에 서 있는 월계수 나뭇가지를 타고 정원으로 내려간다. 이제 막 나뭇가지를 치고 난 때에는 지붕 쪽으로 해서 방에까지 다시 올라와 가지고 층계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이놈은 겁이라곤 전혀 몰랐다. 어지러운 줄도 모르고 낙수 홈통을 타고 걸어다니기도 했으며 정원에 사람들이 있을 때면 눈길을 끌어 칭찬을 받으려고 살구나무의 맨 꼭대기에까지 기어올라가기도 했다. 이제는 눈치가 생겨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애써 하지 않는다. 재주를 부리는 재미는 줄었고 편안한 것을 찾는 취미는 늘었다. 그의 애정은 보다 확실한 것이 되었다. 아침이면 나의 어머니 발 아래서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몸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어머니가 제 몸 위에 발을 지그시 올려놓아야 멈춘다. 이 중세기적 의식이 만족되면 부엌으로 가서 우유를 마시고 전날 밤에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찬 음식을 맛본다.


오후에는 침대 위에 가 엎드려서 앞발을 납죽이 뻗은 채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잔다. 어제는 흥청대며 한바탕 놀았으니 아침 일찍부터 내게 찾아와서 하루 종일 이 방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때다 싶은지 여느때 같지 않게 한결 정답게 굴어댄다. 피곤하다는 뜻이다 - 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준다.


황혼녘, 대낮의 그 마지막 힘이 다해가는 저 고통의 시각이면, 나는 내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고양이를 내 곁으로 부르곤 했다. 그 불안감을 뉘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랴? "나를 진정시켜 다오"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불어 내게 낯익은 유령들이 깨어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세 번 무섭다. 해가 저물 때, 내가 잠들려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나를 저버리는 세 번.. 허공을 향하여 문이 열리는 저 순간들이 나는 무섭다 - 짙어가는 어둠이 그대의 목을 조이려 할때, 한밤중에 잠깨어 나는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를 가늠해 볼 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생각이 미칠 때. 잠이 그대를 돌처럼 굳어지게 할 때, 대낮은 그대를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장치조차 없다." 


물루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나는 그의 몸 위에 내 시선을 가만히 기대어 본다. 그러면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믿음직스러워졌다.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그의 현전) 물루를 바라보면서 축복의 순간들을 생각해 보자. 지난 어느 날 저녁, 나는 포플러나무들 밑을 지나다가 그 높은 나뭇가지들이 분간할 길 없이 한데 섞인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정오에는 햇빛으로 눈부신 들판 앞에서 나는 보았고 나는 다 받아드렸다. 달빛 비치는 폐허를 앞에 두고 나는,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유산받을 수 있으며 그 허물어지기 윗운 선물만으로도 흡족한 것이 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아침에는 문을 열어젖히자 열기가 확 끼쳐오며 전신을 엄습해 왔다 - 

 

이것이 전부다.


너는 아무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네 말을 다 듣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에요. 나는 그 폐혀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에요. 대양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같이, 나는내 모습 겉모습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에 들 듯 제 속으로 돌아올 거에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가만히 맡겨보세요"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서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여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한갓 환상일 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보면 그는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접시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욕망은 치열하다못해 벌써 음식 위로 튀어 올라가 앉는 것만 같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웅크린다. 행동에 빈틈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도리가 없다.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야말로 끝없는 연쇄조직처럼 일사불란하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노라면 이런 가득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해야 할 대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나는 마침내 나 스스로 사랑한다고 자처했던 이 존재들, 그리고 나자신과 따로 떼어놓을 길 없었던 나를 보고 넋을 잃고 있다. 당혹스러운 어떤 필연성이 나의 조건으로부터 멀리 멀리 나를 데려간다. 인간들은 남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루가 자신이 고양이인 것에 만족해하듯이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인 것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물루의 생각은 옳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왜냐하면 물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의 입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들에게 그 점을 설득시켰으면 싶다. 우리들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없으며 우리들의 입장이란 성립될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을. 그러니 도망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발 딛고 도망칠 단 한치의 단단한 땅도 없다. 물루와... 사이에는.